냉장고 앞에서 문을 열어 둔 채 고민하면 "전기 나간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을 여는 일과 비교도 안 되게 큰 짐이 따로 있고, 설정 온도를 둘러싼 오해도 하나 있습니다. 원리부터 차례로 보겠습니다.

화면의 3도는 냉장고 전체의 온도가 아닙니다

화면에 뜨는 숫자는 센서 한 곳이 맞추려는 목표값입니다. 냉장고는 그 자리가 목표보다 따뜻해지면 압축기를 돌리고, 차가워지면 멈춥니다. 그래서 실제 온도는 늘 조금씩 오르내리고, 자리마다 다릅니다.

자리경향이유
문 선반가장 따뜻함문을 열 때마다 바깥 공기에 바로 닿습니다
안쪽 뒤 · 찬바람 나오는 곳 근처가장 차가움냉기가 먼저 닿습니다. 채소가 얼기도 합니다
위 칸과 아래 칸제품마다 다름찬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지만, 바람 구멍 위치에 따라 바뀝니다

흔히 권하는 기준은 냉장실 5도 이하, 냉동실 −18도 이하입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냉장실을 4도 이하로 권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면 숫자가 아니라 음식이 놓인 자리의 온도가 이 기준 안에 드는가입니다.

직접 재는 법

공기 온도는 문을 여는 순간 바뀌어서 잘 안 맞습니다. 대신 물컵에 온도계를 꽂아 재고 싶은 칸에 두고, 하룻밤 지난 뒤 문을 열자마자 읽습니다. 물은 음식처럼 천천히 데워지고 식으므로, 음식이 실제로 겪는 온도에 가깝습니다. 문 선반과 안쪽 칸을 따로 재 보면 차이가 보입니다.

설정을 1도 낮추면 얼마나 더 드나

냉장고 벽을 타고 들어오는 열은 방과 냉장고 안의 온도 차이에 비례합니다. 방이 25도일 때 냉장실을 4도에서 3도로 낮추면 차이가 21도에서 22도로, 그 칸으로 새어 드는 열이 약 5% 늘어납니다. 여기에 냉각기를 더 차갑게 돌릴수록 압축기의 효율이 떨어지는 몫이 더해집니다.

다만 내 냉장고의 전기요금이 몇 % 바뀌는지는 적지 않겠습니다. 단열 상태, 방 온도, 음식 양, 압축기 방식에 따라 달라서 어림이 맞지 않습니다. 궁금하시면 콘센트에 꽂는 전력량 측정기를 끼우고 설정마다 최소 이틀씩 누적 사용량을 비교해 보시면 됩니다. 하루는 문을 연 횟수에 따라 크게 흔들립니다.

같은 이유로 방이 더우면 냉장고가 더 일합니다. 가스레인지 옆이나 햇볕 드는 자리, 뒤쪽과 옆이 벽에 바짝 붙은 자리는 냉장고가 열을 버리기 어렵게 만듭니다. 띄워야 할 간격은 설명서에 있습니다.

문을 열면 실제로 무엇이 들어오나

세 가지 열의 크기를 막대로 비교한 그림. 문을 열어 냉장고 안 공기를 전부 바꿨을 때 다시 식힐 열 약 10킬로줄, 그 공기의 습기가 성에가 될 때 나오는 열 약 8킬로줄, 80도 국 1리터를 4도까지 식힐 열 약 320킬로줄. 마지막 막대가 앞의 둘보다 30배 이상 깁니다

400리터 냉장고 안 공기는 0.5kg 남짓입니다. 문을 열어 이 공기가 25도짜리로 전부 바뀌었다고 쳐도, 4도까지 다시 식히는 데 드는 열은 약 10kJ, 와트시로 3Wh 정도입니다. 공기는 가벼워서 열을 별로 품지 못합니다.

그래서 문을 한 번 여는 것 자체보다 다음 두 가지가 더 큽니다.

  • 습기. 들어온 공기의 수증기가 차가운 냉각기에 닿아 얼면서 열을 내놓습니다. 25도 · 습도 60% 공기라면 이 몫도 공기를 식히는 열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그리고 그 물은 성에로 남습니다.
  • 오래 열어 두기. 열어 둔 동안 공기는 계속 바뀌고, 벽과 선반과 음식 표면이 데워집니다. 짧게 여러 번보다 한 번 길게가 더 나쁩니다.

정작 무거운 것은 뜨거운 음식입니다

물은 공기보다 무게당 네 배 넘게 열을 품고, 같은 부피라면 훨씬 무겁습니다. 80도 국 1리터를 4도까지 식히는 열은 약 320kJ로, 냉장고 공기를 통째로 바꾼 것의 30배쯤 됩니다. 국에서 나오는 김은 그대로 성에가 됩니다.

여기서 예외가 있습니다. 전기를 아끼겠다고 음식을 실온에 오래 두면 안 됩니다. 세균이 빨리 느는 온도 구간을 오래 지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권하는 방법은 두 시간 안에 넣되, 얕은 그릇에 나눠 담아 빨리 식히고 뚜껑을 덮는 것입니다. 큰 냄비째 넣으면 가운데가 오래 따뜻하게 남습니다.

성에는 어디서 오고, 왜 문제인가

성에는 공기 중 수증기가 가장 차가운 표면에 바로 얼어붙은 것입니다. 냉장고 방식에 따라 보이는 자리가 다릅니다.

방식성에가 생기는 곳특징
간접 냉각(팬으로 찬바람을 돌림)벽 뒤에 숨은 냉각기주기적으로 히터가 녹여 물로 빼냅니다. 그 히터도 전기를 씁니다
직접 냉각(벽 자체가 차가움)안쪽 벽면쌓이면 눈에 보이고, 사람이 녹여 없애야 합니다

성에는 단열재처럼 작동합니다. 두꺼워질수록 냉각기와 공기 사이에서 열이 잘 안 오가서 압축기가 더 오래 돕니다. 흔히 두께 5mm 를 녹일 때로 들지만, 그 숫자를 뒷받침하는 실측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자동으로 녹이는 냉장고인데 냉동실 벽이나 음식에 얼음이 계속 생긴다면, 원리상 습기가 어딘가로 계속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의심할 곳은 이렇습니다.

  1. 문 고무 패킹. 종이 한 장을 끼우고 문을 닫은 뒤 당겨 봅니다. 힘없이 쑥 빠지는 자리가 있으면 그쪽이 샙니다.
  2. 문이 음식이나 서랍에 걸려 덜 닫히는 경우.
  3. 녹은 물이 빠지는 배수 구멍이 막힌 경우. 이때는 냉장실 바닥에 물이 고이기도 합니다.

꽉 채우면 좋은가

냉동실은 채울수록 문을 열었을 때 온도가 덜 흔들립니다. 언 음식이 찬 기운을 붙잡아 두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냉장실을 빈틈없이 채우면 찬바람 나오는 구멍이 막혀 칸마다 온도 차이가 커질 수 있습니다. 구멍 앞만 비워 두면 됩니다.

정리

  • 화면의 숫자는 목표값입니다. 물컵에 온도계를 꽂아 칸마다 실제 온도를 재 보세요.
  • 냉장실 5도 이하, 냉동실 −18도 이하가 흔히 쓰는 기준입니다. 문 선반이 가장 따뜻합니다.
  • 문을 한 번 여는 열은 작습니다. 오래 열어 두기와 그때 들어온 습기가 성에가 되는 것이 더 큽니다.
  • 뜨거운 국 한 냄비가 문 여닫기보다 훨씬 큰 짐이지만, 실온에 오래 두지 말고 나눠 담아 빨리 식힙니다.
  • 자동 성에 제거 냉장고에 얼음이 계속 생기면 문 패킹과 배수 구멍부터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