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드 크롤러에 적이 다섯 종 있었습니다. 해골 병사, 굶주린 쥐, 동굴 거미, 진흙 골렘, 망령. 그림도 이름도 체력도 다릅니다.
그런데 전투는 한 종류였습니다. 다섯 종 다 정면으로 걸어와 때렸고, 그래서 파티가 세울 대책도 하나뿐이었습니다 — 제일 약한 놈부터 팬다. 종을 여섯째, 일곱째로 늘려도 같았을 것입니다. 숫자만 달라지는 적은 새 적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느냐와 누구를 노리느냐
그래서 종이 아니라 역할을 넷으로 나눴습니다.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누구를 노리는가.
| 역할 | 하는 일 |
|---|---|
| 정면형 | 그냥 때린다. 가끔 힘껏 내리치고, 체력이 35% 아래로 떨어지면 웅크려 버틴다 |
| 추격형 | 이미 약해진 대원을 집요하게 문다 |
| 사수형 | 앞줄 너머를 쏜다. 방어가 가장 낮은 대원을 겨누고, 상대 방어를 절반만 센다 |
| 주술형 | 동료를 치유하고(전투당 세 번까지) 침묵·마비를 건다 |
넷이 되고 나서야 파티의 판단이 생겼습니다. 앞의 정면형을 먼저 눕힐지, 뒤에서 치유하는 주술형을 뚫고 들어갈지. 약한 놈부터 패면 지는 배치가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궁수는 혼자 나오지 않습니다
역할을 나누고 나니 배치 규칙이 하나 따라왔습니다. 사수형과 주술형은 단독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막아 주는 놈이 없는 무리는, 파티가 아무 저항 없이 걸어 들어가 뒤부터 정리하고 끝납니다. 그러면 "뒤를 지키는 적"이라는 역할이 무의미해집니다. 역할은 다른 역할이 같이 있을 때만 뜻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둘은 화면에서도 뒷줄에 섭니다. 활을 든 놈이 맨 앞에 서 있으면 "앞줄 너머를 쏜다"는 규칙과 눈에 보이는 것이 어긋납니다. 규칙이 옳아도 화면이 다른 말을 하면 플레이어는 화면을 믿습니다.
오류가 안 나서 아무도 몰랐던 것
적은 층마다 다르게 나오고, 같은 종도 깊이 내려갈수록 조금씩 세집니다. 여기서 조용한 구멍이 하나 있었습니다.
등장 범위가 가장 깊은 것이 9층까지였습니다. 던전은 12층인데요. 그래서 10~12층에서는 어떤 종도 조건에 맞지 않아 예비값인 해골 병사만 나왔습니다. 마지막 세 층, 가장 긴장해야 할 구간이 첫 층과 같은 적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오류는 나지 않습니다. 목록에서 하나도 못 고르면 기본값을 쓰는 코드는 정상 동작이니까요. 지금은 검사가 "그 층에 주축이 될 종이 없다"를 실패로 잡습니다. 층을 늘릴 때마다 사람이 표를 다시 훑는 대신, 빈칸이 생기면 빌드가 멈춥니다.
"해골 병사 A" 대신 "왼쪽 해골 병사"
같은 종이 여럿 나오면 이름이 겹칩니다. 흔한 해법은 뒤에 글자를 붙이는 것입니다 — 해골 병사 A, B, C.
두 가지가 걸렸습니다. 하나는 한국어입니다. "해골 병사 A이" 처럼 조사가 깨집니다. 다른 하나가 더 큽니다 — A가 화면의 어느 놈인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은 선 자리로 부릅니다. 왼쪽 해골 병사, 가운데 해골 병사. 대상을 고를 때 플레이어가 화면을 보고 고르는 것과 이름이 같아집니다. 이름표 순서와 실제 서는 자리가 어긋나면 대상 선택이 거짓말이 되므로, 그 일치도 검사가 봅니다.
회복 수단이 곧 난이도입니다
역할을 나누면서 같이 조정한 것이 회복입니다. 지금은 셋뿐입니다.
- 전투가 끝나면 쓰러진 대원이 HP 1로 일어나고, 살아남은 대원은 최대 MP의 12%를 되찾습니다
- 사제가 MP를 써서 전투 밖에서 가장 다친 대원을 회복시킵니다
- 층 입구의 룬이 층당 딱 한 번 완전히 회복시켜 줍니다. 쓰고 나면 빛이 죽어 멀리서도 보입니다
무제한으로 회복되면 전투에 무게가 없고, 회복이 없으면 실력과 무관하게 소모전으로만 죽습니다. 이 셋의 배합은 화면을 보고 정한 게 아니라 전투 시뮬레이터로 맞췄습니다 — 사람이 열 판 해 보고 "좀 어렵다"고 말하는 것과, 수백 판을 돌려 층별 승률을 보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금 지하 12층 심연의 군주까지 한 바퀴가 돕니다. /crawler/에서 바로 내려가실 수 있습니다. 시작 화면에서 여섯 직업 중 넷을 고르고, 씨앗값을 적으면 같은 던전을 다시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