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청정기를 고르면 상자마다 "15평형", "~50㎡" 같은 숫자가 크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 집 거실이 15평이면 15평형을 사면 될 것 같지만, 이 숫자는 방이 몇 평이면 맞는다는 보증이 아닙니다. 기계가 1분에 깨끗한 공기를 얼마나 내보내는지를 정해진 기준으로 면적으로 바꾼 값입니다.

기계가 실제로 내는 숫자는 하나입니다

공기청정기가 하는 일은 방 공기를 빨아들여 필터에 통과시키고 다시 내보내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성능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청정화능력(CADR) = 필터를 지나는 바람의 양 × 한 번 지날 때 걸러지는 비율

바람이 많아도 필터 옆 틈으로 공기가 새면 숫자가 떨어지고, 필터가 아무리 촘촘해도 바람이 약하면 역시 떨어집니다. 국내 표기는 ㎥/분, 미국 표기는 CFM(분당 세제곱피트)이고 1CFM 은 약 0.0283㎥/분입니다.

평수는 그 숫자에 계수를 곱한 것입니다

면적 표기는 이 CADR 에 계수를 곱해 만듭니다. 계수는 "방 공기를 몇 분 안에 얼마만큼 맑게 해야 하느냐"는 기준에서 나옵니다. 기준이 느긋할수록 같은 기계가 더 넓은 방에 맞는다고 적힙니다.

기준환산CADR 5㎥/분 기계의 표기 면적
국내 표준사용면적CADR(㎥/분) × 약 7.7~7.9약 39㎡ (약 12평)
미국 가전협회(AHAM) 어림 규칙CADR(CFM) ≥ 면적(ft²)의 2/3약 25㎡ (약 7.4평)

국내 계수는 자료마다 7.7 또는 7.9 로 다르게 소개되어 있고, 표준 원문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미국식 어림 규칙보다 1.5배 넘게 넓게 적힙니다.

이 차이를 시간으로 바꿔 보면 뜻이 분명해집니다. 천장 높이를 2.4m 로 잡고 제가 계산해 보면, 국내식 면적의 방에서는 기계가 한 시간에 방 공기를 약 3.2번 걸러 내고, 미국식 면적의 방에서는 약 5번 걸러 냅니다. 어느 쪽이 틀린 게 아니라,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다른 것입니다.

표기 면적은 '가장 센 바람' 기준입니다

청정화능력은 보통 최대 풍량에서 잽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소음 때문에 약풍이나 자동으로 두는 때가 많습니다. 약풍의 풍량이 최대의 얼마인지는 기계마다 달라서 여기 숫자를 적지 않았지만, 약풍으로 쓸 생각이라면 표기 면적보다 넓은 방에 두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흔히 쓰는 요령은 방 면적보다 넉넉하게, 대략 1.5~2배 표기 제품을 고르는 것입니다. 이건 위 두 기준의 차이와 약풍 사용을 감안한 어림이지, 측정으로 정해진 배수는 아닙니다.

헤파 등급은 필터 한 장의 성적입니다

등급 (유럽 EN 1822)가장 빠져나가기 쉬운 크기의 입자 포집률
E1299.5% 이상
H1399.95% 이상
H1499.995% 이상

여기서 "가장 빠져나가기 쉬운 크기"는 대략 0.1~0.3㎛ 입니다. 이보다 크면 섬유에 부딪혀 걸리고, 작으면 이리저리 흔들리다 섬유에 붙기 때문에 오히려 잘 잡힙니다.

조심할 점은 두 가지입니다.

  • 필터 등급이 기계 성능은 아닙니다. H13 필터를 끼워도 틀 가장자리로 새면 기계 전체의 포집률은 그보다 낮습니다.
  • 더 촘촘한 필터는 바람을 막습니다. 같은 팬이라면 등급이 오를수록 풍량이 줄 수 있습니다. 방 공기를 빨리 돌리는 데는 H13 과 H14 의 차이보다 풍량의 차이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에서 직접 재 보는 방법

공기청정기 가동 뒤 방 미세먼지가 줄어드는 곡선 세 개. 가로축은 0분부터 60분, 세로축은 처음 농도를 100으로 둔 남은 비율입니다. 시간당 공기 교환 2회 곡선은 30분에 37이 남고, 3.2회는 20, 5회는 8이 남습니다. 아래에는 실제 공기 교환 횟수를 처음과 나중 농도의 자연로그 비를 걸린 시간으로 나눠 구하는 식이 적혀 있습니다.

미세먼지(PM2.5) 측정기가 있으면 우리 집에서의 실제 성능을 잴 수 있습니다.

  1. 요리 뒤처럼 수치가 올라가 있을 때 창문과 방문을 닫습니다.
  2. 평소 쓰는 바람 세기로 켜고, 5분마다 수치를 적습니다.
  3. 수치가 처음의 절반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적습니다.
  4. 시간당 공기 교환 = ln(처음 수치 ÷ 나중 수치) ÷ 걸린 시간(시간) 으로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30분(0.5시간) 만에 80 에서 20 으로 내려갔다면 ln(4) ÷ 0.5 = 약 2.8회입니다. 같은 측정을 청정기를 끈 채로 한 번 더 하면 자연적으로 줄어드는 몫을 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방 부피(㎥)를 곱하면 그 방에서 실제로 나오는 청정화능력(㎥/시간)이 됩니다.

간이 측정기는 절대값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서 비율만 보는 이 방법이 낫습니다. 다만 측정기를 청정기 바로 앞에 두면 실제보다 좋게 나오므로 방 반대편에 둡니다.

공기청정기가 못 하는 일

  • 이산화탄소는 줄이지 못합니다. 사람이 있는 방이 답답해지는 건 먼지가 아니라 이산화탄소 탓인 경우가 많고, 이건 환기로만 빠집니다.
  • 냄새와 가스는 헤파가 아니라 탈취 필터 몫입니다. 활성탄은 흡착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서 포화되면 효과가 떨어지는데, 언제 포화되는지는 겉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 문이 열린 집은 하나의 큰 방입니다. 방문을 열어 두면 계산에 넣어야 할 부피가 커집니다.
  • 필터가 막힐수록 풍량이 줄어듭니다. 새 필터일 때의 성능이 교체 직전까지 그대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정리

  • 평수 표기는 CADR(㎥/분) × 계수이고, 계수는 "얼마나 빨리"라는 기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 같은 기계도 국내식은 미국식 어림 규칙보다 1.5배 넘게 넓게 적힙니다.
  • 표기는 최대 풍량 기준이라, 약풍으로 쓸 거면 방보다 넉넉한 표기를 고릅니다.
  • 헤파 등급은 필터의 성적이고, 기계 성능은 풍량과 틈새가 함께 정합니다.
  • 측정기가 있으면 ln(처음 ÷ 나중) ÷ 시간으로 우리 집 실제 성능을 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