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기 상자에 65W 라고 크게 적혀 있어도, 꽂아 보면 예전 충전기와 별 차이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충전기 불량을 의심하기 전에, 급속충전이 한쪽의 힘이 아니라 세 쪽의 합의라는 점부터 보면 대부분 설명됩니다.

전력은 전압 × 전류이고, 둘 다 올리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충전 속도를 정하는 것은 전력(W)이고, W = V(전압) × A(전류) 입니다.

  • 전류를 올리는 방법 — 케이블과 단자에 열이 납니다. 열은 전류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전류를 두 배로 하면 같은 케이블에서 나는 열은 네 배가 됩니다
  • 전압을 올리는 방법 — 같은 전력을 더 적은 전류로 보낼 수 있어 케이블이 덜 뜨거워집니다. 대신 받는 쪽(폰)이 그 전압을 버틸 수 있어야 합니다

USB 의 기본 전압은 5V 이고, 아무 확인 없이 5V 보다 높은 전압을 보내면 그 전압을 모르는 기기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급속충전은 "높은 전압을 받아도 되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절차에서 시작합니다. 이 확인 절차가 곧 충전 규격입니다.

같은 15W 를 보낼 때 전압별 전류와 케이블 발열을 비교한 그림. 5V 는 3A, 9V 는 약 1.7A, 15V 는 1A, 20V 는 0.75A 가 필요하고, 같은 케이블에서 나는 열을 5V 를 100으로 두면 9V 는 약 31, 15V 는 약 11, 20V 는 약 6입니다. 열이 전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계산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PD 와 QC 는 서로 다른 말입니다

USB PD퀄컴 퀵차지(QC) 2.0·3.0
누가 정했나USB 표준 단체(USB-IF)퀄컴
협상하는 길USB-C 의 CC 선으로 디지털 메시지USB 의 데이터 선(D+·D−) 전압으로 신호
주는 전압5·9·15·20V 고정 단계, 확장 규격(EPR)은 28·36·48V 까지QC 2.0 은 5·9·12V, QC 3.0 은 3.6V 부터 0.2V 단위로
주로 쓰는 단자USB-CUSB-A 가 많음

핵심은 두 규격이 서로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폰은 PD 로 요청하는데 충전기가 QC 만 안다면, 협상이 성립하지 않아 둘 다 안전한 기본값인 5V 로 충전합니다. 이때 화면에는 "충전 중"만 뜨고 오류는 나오지 않아서 고장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PD 에는 PPS 라는 추가 기능도 있습니다. 고정 단계 대신 전압을 0.02V 단위로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인데, 일부 폰은 가장 빠른 단계를 PPS 로만 씁니다. 그래서 같은 "PD 충전기"라도 PPS 를 지원하지 않으면 그 폰에서는 한 단계 낮은 속도로 충전됩니다. 겉면 표기에 "PPS" 가 있는지가 갈림길입니다.

QC 4 이후 판은 PD 와 호환되도록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판마다 어디까지 호환되는지는 이 글에서 하나하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케이블이 전류의 천장을 정합니다

USB-C 케이블은 겉보기에 같아도 흘릴 수 있는 전류가 다릅니다.

케이블전류 상한20V 에서 최대
일반 USB-C 케이블3A60W
전자 표시 칩(e-marker)이 든 5A 케이블5A100W
확장 규격(EPR)용 5A 케이블5A, 48V 까지240W

충전기는 3A 를 넘기기 전에 케이블 속 칩에게 "몇 A 까지 되느냐"를 묻습니다. 칩이 없으면 3A 로 간주하므로, 100W 충전기와 100W 를 받는 노트북 사이에 일반 케이블을 끼우면 60W 에서 멈춥니다. 폰은 대부분 3A 안쪽에서 충전되므로 이 차이가 드러나는 일은 노트북에서 더 흔합니다.

USB-A 쪽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 충전 전용 케이블은 데이터 선이 빠져 있을 수 있는데, QC 는 데이터 선으로 협상하므로 이런 케이블에서는 급속충전이 켜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 가늘고 긴 케이블은 저항이 커서 가는 길에 전압이 떨어집니다. 폰이 전압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스스로 전류를 줄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도 빠르지 않은 경우

세 쪽이 모두 맞아도 계속 빠른 것은 아닙니다.

  • 배터리가 찰수록 느려집니다. 리튬이온은 대개 80% 안팎부터 전압을 일정하게 붙잡고 전류를 줄여 가며 채웁니다. 급속충전 광고의 "몇 분에 몇 %" 는 대부분 빈 상태부터의 앞부분 숫자입니다
  • 뜨거우면 폰이 스스로 늦춥니다. 충전하며 게임을 하거나, 두꺼운 케이스에 넣어 두거나, 햇볕 아래에 두면 배터리 온도를 지키려 속도를 낮춥니다
  • 포트가 여럿인 충전기는 전력을 나눕니다. 65W 라도 두 대를 꽂으면 각 포트에 가는 몫이 줄고, 나누는 방식은 제품마다 달라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 충전기 숫자는 최대값입니다. 폰이 18W 까지만 받는다면 65W 충전기에서도 18W 입니다. 반대로 큰 충전기가 작은 폰에 억지로 밀어 넣지는 않습니다. 흐르는 양은 폰이 요청한 만큼입니다

안 되는 것과 예외

  • 규격을 지키지 않은 충전기·케이블에는 위 설명이 맞지 않습니다. 협상 없이 높은 전압을 내거나 칩 정보를 부풀린 제품은 발열과 고장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 제조사 고유 급속충전도 있습니다. PD 나 QC 가 아닌 자체 방식을 쓰는 폰은 같은 회사 충전기와 케이블에서만 가장 빠른 속도가 나오고, 다른 충전기에서는 PD 단계로 내려갑니다
  • 무선 충전은 이 글의 협상과 별개의 규격이라, 유선 급속충전을 지원한다고 무선도 빠르지는 않습니다
  • 급속충전이 배터리를 더 빨리 늙게 하는지는 온도 관리에 따라 달라 이 글에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열이 리튬이온 배터리에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디서 막혔는지 직접 보는 법

  1. USB 전력 측정기(전압·전류를 보여 주는 작은 장치)를 충전기와 케이블 사이에 꽂습니다
  2. 배터리가 30~50% 쯤일 때, 화면을 끈 채로 숫자를 봅니다. 다 찬 상태에서는 원래 느리므로 판단이 흐려집니다
  3. 전압이 5V 그대로라면 협상이 실패한 것입니다. 규격(PD·QC·PPS)이 맞는지부터 봅니다
  4. 전압은 9V 이상인데 전류가 3A 근처에서 멈춘다면 케이블이 천장일 수 있습니다. 5A 케이블로 바꿔 다시 봅니다
  5. 같은 방법으로 케이블만, 충전기만 하나씩 바꿔 보면 세 고리 중 어느 쪽이 약한지 가릴 수 있습니다

측정기 가운데는 어떤 규격으로 협상했는지까지 보여 주는 것도 있지만, 그 기능이 없어도 전압과 전류만으로 대부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리

  • 급속충전은 전압을 올려도 되는지 확인하는 협상이고, 그 협상 방식이 PD·QC 같은 규격입니다
  • PD 와 QC 는 서로 다른 말이라, 맞지 않으면 조용히 5V 로 돌아갑니다. 일부 폰은 PPS 까지 요구합니다
  • 케이블이 전류의 상한을 정합니다. 칩 없는 USB-C 케이블은 3A, 20V 에서 60W 까지입니다
  • 전압을 올리는 이유는 같은 전력을 적은 전류로 보내 케이블 열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 막힌 곳은 USB 전력 측정기의 전압(협상)과 전류(케이블) 로 직접 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