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을 시작할 때쯤이면 꼭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외출한다고 껐다가 돌아와서 다시 데우면 그게 더 든다" 는 말입니다. 반대로 "안 쓸 때 켜 두는 건 돈을 버리는 것" 이라는 말도 같이 나옵니다.
둘 중 하나는 틀렸을 텐데, 겪어 본 사람마다 말이 다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이 맞는지가 아니라 왜 그렇게 갈리는지를 적어 두려고 합니다.
열은 온도 차이를 따라 나갑니다
집이 식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안이 따뜻하고 밖이 차가워서, 벽과 창과 문틈으로 열이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빠져나가는 속도는 안팎의 온도 차이에 비례합니다.
바깥이 0도일 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 실내를 22도로 두면 차이는 22도입니다
- 실내를 18도로 두면 차이는 18도입니다
두 번째 쪽이 초당 새는 열이 대략 5분의 4로 줄어듭니다. 집을 고친 것도 아니고 창을 바꾼 것도 아닌데, 안 온도를 낮춘 것만으로 새는 양이 줄어듭니다.
보일러가 하는 일은 결국 새어 나간 만큼을 도로 채워 넣는 것입니다. 새는 양이 줄면 채워 넣을 양도 줍니다.
그럼 "다시 데우는 값"은 어디서 오나
여기서 반론이 나옵니다. 식은 집을 원래 온도로 되돌리려면 한꺼번에 많이 때야 하는데, 그게 아낀 것보다 크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데우는 데 드는 열은 그동안 집이 잃은 열과 같습니다. 집이 18도까지 식었다면, 22도로 되돌리는 데 필요한 것은 딱 그 4도만큼입니다. 그 4도는 없어진 게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벽으로 빠져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은 낮은 온도로 지냈으므로 새는 속도가 계속 더 느렸습니다. 그래서 아낀 양이 되데우는 양보다 항상 크거나 같습니다.
즉 껐다 켜서 손해가 나는 구조가 아닙니다. 이건 집 구조나 보일러 종류와 상관없이 성립합니다. 열이 온도 차이를 따라 흐른다는 것만 참이면 됩니다.
그런데 왜 "해 봤는데 차이 없더라"가 나오나
이 말도 거짓이 아닙니다. 한국 아파트에서는 차이가 정말 작게 나옵니다. 이유가 둘입니다.
콘크리트가 잘 안 식습니다
아파트 바닥과 벽은 두꺼운 콘크리트입니다. 콘크리트는 열을 많이 머금고 천천히 내놓습니다. 보일러를 꺼도 두세 시간으로는 실내 온도가 1~2도밖에 안 떨어지는 집이 많습니다.
온도가 안 떨어졌다는 건 온도 차이가 그대로였다는 뜻이고, 그러면 아낀 열도 얼마 안 됩니다. 계산상 이득은 분명히 있는데, 고지서에서 알아볼 만한 크기가 아닌 것입니다.
온수는 따로 돕니다
가스 사용량에는 난방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샤워와 설거지에 쓴 온수도 같이 들어갑니다. 이쪽이 달마다 들쭉날쭉해서, 난방 방식을 바꿔 생긴 작은 차이를 덮어 버립니다. 한 달 고지서 두 장을 비교해서는 결론이 안 납니다.
끄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낮출수록 이득"이었는데, 그렇다고 아무 때나 꺼도 되는 건 아닙니다.
한파에 오래 비울 때 — 동파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영하로 오래 내려가는 날 집을 며칠 비우면서 보일러를 완전히 끄면 배관이 얼 수 있습니다. 얼면 터지고, 터지면 난방비를 아낀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돈이 듭니다.
보일러에 외출 모드가 따로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외출은 끄는 게 아니라 얼지 않을 최저선만 유지하는 것입니다. 며칠 비울 때는 끄지 말고 외출로 두십시오.
응축식 보일러 — 낮은 온도로 길게가 유리합니다
요즘 보일러는 대부분 응축식(콘덴싱) 입니다. 배기가스에 남은 수증기가 물로 맺힐 때 나오는 열까지 회수하는 방식인데, 돌아오는 물의 온도가 낮을 때만 그 응축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응축식은 난방수 온도를 낮게 두고 오래 도는 쪽이 효율이 좋습니다. 반대로 식은 집을 급히 데우려고 고온으로 세게 돌리면, 물이 뜨겁게 돌아와 응축이 잘 안 일어나 효율이 떨어집니다.
낮추는 것 자체는 이득이지만, 돌아오기 직전에 한꺼번에 몰아 때는 것은 그 이득을 깎아먹습니다. 예약 기능으로 미리 조금씩 올려 두는 편이 낫습니다.
실내온도 모드와 온돌 모드는 다릅니다
- 실내온도(실온) 모드 — 방 공기 온도를 보고 보일러가 알아서 돕니다. 설정을 몇 도 낮춰 두는 방식이 잘 맞습니다
- 온돌(난방수) 모드 — 바닥에 흐르는 물 온도를 맞춥니다. 방이 몇 도인지는 보지 않으므로, 바깥 날씨가 바뀌면 방 온도도 같이 흔들립니다
외출 때 온도를 낮춰 두는 방식은 실온 모드에서 다루기 쉽습니다. 온돌 모드를 쓰고 있다면 물 온도를 낮추는 쪽으로 같은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나
| 비우는 시간 | 하면 되는 것 |
|---|---|
| 두세 시간 | 그냥 두거나 2~3도만 낮춥니다. 어차피 잘 안 식어서 차이가 작습니다 |
| 반나절 | 설정을 낮춰 둡니다(외출 모드 또는 16~18도). 끄는 것보다 다루기 쉽습니다 |
| 하루 이상 | 외출 모드로 둡니다 |
| 며칠 이상, 한파 | 반드시 외출 모드. 완전히 끄면 동파 위험이 있습니다 |
여기에 두 가지를 더하면 좋습니다.
- 돌아오기 한두 시간 전에 예약으로 올려 둡니다. 급히 몰아 때는 것을 피하면서 도착할 때는 따뜻합니다
- 잘 때는 낮춥니다. 이불 속에서는 방 온도가 몇 도 낮아도 견딜 만하고, 밤은 바깥이 제일 차가워서 온도 차이가 가장 큰 시간입니다. 같은 1도라도 이때 낮추는 게 가장 많이 아낍니다
내 집에서 직접 재 보는 법
집마다 단열도 구조도 달라서, 남의 집 결과는 참고밖에 안 됩니다. 확인하려면 가스 계량기 숫자를 직접 적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 한 주는 지금 하던 대로 지내고, 매일 같은 시각에 계량기 숫자를 적습니다
- 다음 주는 방식을 바꿔서 같은 식으로 적습니다
- 두 주의 바깥 기온이 비슷했는지 확인합니다. 한파가 낀 주와 포근한 주를 비교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 샤워 횟수도 비슷하게 맞춥니다. 온수가 같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는 맞춰야 "이 집에서는 이쪽이 낫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정리
- 열은 안팎의 온도 차이에 비례해 나갑니다. 실내를 낮추면 새는 속도가 줄어듭니다
- 다시 데우는 값은 그동안 덜 나간 양을 넘지 못합니다. 껐다 켜서 손해 보는 구조가 아닙니다
- 다만 한국 아파트는 잘 안 식어서 짧은 외출로는 차이가 거의 안 납니다
- 응축식 보일러는 낮은 온도로 길게가 유리합니다. 몰아 때지 말고 예약으로 미리
- 며칠 비울 때 완전히 끄는 것은 위험합니다. 외출 모드로 두십시오
- 가장 확실하게 아끼는 한 가지는 밤에 낮추는 것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제 집에서 두 주를 나눠 재어 비교하지는 않았습니다. 위에 적은 재는 방법은 그렇게 하면 확인할 수 있다는 절차이고, 이 글에 실린 결과가 아닙니다. 그래서 "몇 % 아낀다" 같은 숫자를 적지 않았습니다. 집마다 단열이 달라 그 숫자는 어차피 옮겨 쓸 수 없습니다.
응축식 보일러의 효율이 난방수 온도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도 제품별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낮은 온도로 길게 도는 쪽이 유리하다는 방향까지만 적었습니다.
겨울에 같이 쓰게 되는 물건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적어 두었습니다. 온수매트와 전기장판은 방 전체 대신 몸에 닿는 자리만 데우는 쪽이라, 위에서 말한 "밤에 낮추기"와 같이 쓰면 셈이 맞습니다. 전기히터 종류는 보일러를 덜 돌리는 동안 한 자리만 데우는 방법을 다룹니다.